2014년 3월 31일 월요일

마지막 아담 안상홍님


[ 아버지 하나님 ]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일까.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인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예수님은 과연 누구일까.
 
출처 :  패스티브 닷컴
 

안상홍님의 가르침


누가 가르쳐줬을까
 
중남미의 열대림에서는 오늘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헬리코니우스나비와 시계꽃의 싸움이 그것이다.
 
헬리코니우스나비는 시계꽃의 잎사귀만 골라 제 아기들의 요람으로 삼는다. 알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애벌레들은 시계꽃 잎을 야금야금 무서운 속도로 먹어치우며 성장한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 시계꽃은 나비들이 제 몸을 탐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일종의 위장술을 쓴다. 나비가 시각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달려든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잎 모양을 바꿔 다른 식물인 것처럼 위장한다.
 
하지만 나비들은 속지 않는다. 다른 식물처럼 보이는 시계꽃에 날아 앉아 잎 표면을 발로 더듬어 시계꽃인지 아닌지 확인한다. 시계꽃은 다른 속임수를 쓴다. 마술사라도 되는 양 나비의 알처럼 생긴 노란 반점을 잎 표면에 만들어낸다. 이러는 이유 또한 기가 막히다. 나비 애벌레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엄마나비들이 이미 알을 슬어놓은 시계꽃 잎은 절대 제 아기의 요람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듯하다.
 
이밖에도 시계꽃이 사용하는 무기는 가히 지능적이다. 화밀을 분비해 말벌이나 개미를 끌어들여 나비의 알과 애벌레를 잡아먹게 하거나, 애벌레를 꼼짝 못하게 마취시킬 수 있는 화학물질을 품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아주 독한 방법을 사용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고도의 전략을 쓴다. 나비가 시계꽃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덩굴손에 알을 낳는 경우 시계꽃은 제 손을 포기한다. 그러면 덩굴손에 있는 알들은 모조리 땅으로 떨어져 말라 죽게 된다.
 
한낱 잡초요 미물인 이네들이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생존본능을 터득한 것일까. 얼마나 IQ가 높아서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걸까. 대체 누가 이들에게 본능을 뛰어넘는, 예리한 판단력과 지략을 가르쳐줬을까.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이사야 44:24)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 (마태복음 6:26~30)
 
성경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증거한다.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동물학자인 에드윈 G. 콘클린도 생명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명체가 우연히 생길 가능성은 인쇄소가 폭발하면서 완전한 대사전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에 비교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말할 줄도 모르고 생각할 줄도 모르고 머리도 없는 잡초가 고차원의 생존전략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주인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갖고 계신다. 우리 인생들의 생사화복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경배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음이 무서워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2:1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종살이했듯이 우리도 종살이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종노릇에서 우리를 구속하여 해방시켜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6:23),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하심으로 사망을 멸해 주셨습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주는 예수님의 피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6:17-28]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예비하시고 유월절의 포도주로
죄 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라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속된 것은 예수님의 피,
곧 유월절 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날이며
구속주의 기념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하셨으며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22:7-20).
제자들도 유월절을 지켰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인은?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의 인이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한 인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은 물질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으로 인이 되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만 먹고 마신다면 생명이 있으며 영생에 들어갈 특권이 있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우리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가진 교회는 다 그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실제와 맞지 않으면 모두가 다 거짓과 이단이다. 우상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실물의 우상인 것이다. 진정한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며 유월절 성만찬 예식만이 구속의 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최후의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잔을 드시사 말씀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가 너희 구속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 하시며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누가복음 227~20, 요한복음 650~570
 출애굽 할 당시 유월절 양의 피로 인하여 구속함을 받은 것은 (출애굽기 1212~14) 신약시대에 있을 거울이었는데 구약시대 거울을 봄으로 실물의 완전한 유월절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약에 와서 새 언약의 유월절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어린 양의 살과 피)로 이 죄악 세상에서 구속함을 받고 마지막 칠재앙을 면하고 하늘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것을 구약 역사 속에서 다 볼 수 있도록 모형을 두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재앙을 면하는 자들과 마지막 재앙을 받는 자들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에스겔 93~6[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하였다.
 이 땅에 재앙 면하는 표는 애굽에 재앙 내릴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 된 것같이(출애굽기 1212~14절 참고)마지막 칠재앙 내릴 때에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라야 그 큰 재앙을 면하는 것이다.
 평시에 사람들 마음대로 행하는 성만찬은 유월절이 아니다. 반드시 닛산 14일 저녁에 행하는 것이 유월절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의 인침을 받고 재앙 면함을 받는 것은 반드시 유월절에 성만찬을 행해야 되는 것이다.
 안식일 교회 여선지자 화잇 부인도 에스겔 93~6절의 예언은 마지막 때에 144천 성도들에게 재앙 면하는 구속의 표라고 기록하였다
" 특히 교회를 위한 사업을 마치는 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이 능히 설 수 있는 144천명에게 인치는 사업을 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의 잘못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사업에 관한 선지자의 예증 가운데서 손에 각각 살육하는 기계를 잡는 사람들로 표상 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한 표를 두라 이 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마음 속에 성취하신 사업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순결한 표를 받는 사람들은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 표시된 사람 즉, 교회 안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다" 하였으니 안식일 교회가 현재까지는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또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찍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천사는 읽을 수 있는 표이다. 왜냐하면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기록하기를
 "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 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러 갈 때에 지나쳐 버림을 당한다는 생각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 하였으니
 만일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하나님의 인을 받고 있는 도중이 되어야 할 터인데 화잇 부인 자신도 아직 인을 받지 못하고 [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 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 이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 하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인을 구속의 표라고 하였다. 구속의 표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특권인 것이다. 이 특권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빠는 자라야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14, 2214절 비교)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고 넘어가서 표 없는 자에게 재앙을 내린 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구속의 표가 된 것 같이(출애굽기 1213) 남은 백성들에게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재앙의 날에 멸하는 천사가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구속의 인을 받게 한 것이다.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새이름을 믿는다?

하나님의 교회는 두 번째 오신
예수님의 새이름하늘어머니를 믿는 교회입니다
 
 

성령(聖靈)의 이름
 
성자시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두 번째 오실 것으로 예언되었습니다(9:28).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시고
새로운 이름인 예수로 오셨듯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새로운 이름으로 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예수의 새 이름이 있다고 하면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시록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성경으로 장차 될 일을 증거하고 있는 예언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의 새 이름'이라고 증거 하셨으니
예수님의 새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2천 년 전 육체로 임하실 때 여호와의 새 이름으로 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이러한 예언을 알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빠져 예수님의 새 이름을 외면한다면
과거 유대인들의 전철(前哲)을 되풀이하게 되어 이 시대를 통해 이루시는 구속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를 의지할 때
구원의 은혜 가운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자시대에는 여호와의 새로운 이름인 예수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새 이름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은
그 이름을 깨닫고 영접하여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자녀들에게 새 이름의 권능을 체험하도록 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성령(聖靈)의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입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따라 새 이름인 성자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성자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오신다 하였고
두 번째 오시는 분을 성령이라 하였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여호와의 새 이름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