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9일 월요일

안상홍님께서 본 보이시고 가르치신 진리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본보이시고 가르치신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셔서 처음으로 본보이신
침례를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고 6개월이나 1년이 지난 뒤에 하는 교회,
안식일 대신 일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교회,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 하는 교회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고 있으나 행위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교회들이 이단이며 거짓 교회들입니다.
이들의 훼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의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믿고 따르는 진리 교회임을 확신하고 더욱더 열심히 믿고 따라야 되겠습니다.
 

생명과를 회복하신 안상홍님


생명과를 회복하신 안상홍님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죽음의 고통에서 일평생 신음하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사람은 왜 세상에 태어나서 사망의 종노릇하다가 결국은 사망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까요?
또한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분은 누구일까요?
가. 생명과를 잃어버림으로 찾아온 사망
인류 인생에게 죽음이 시작된 곳은 에덴동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창 2:17).
그렇다면 선악과에 독이 있어 죽게 되었을까요? 만약에 독이 있었다면 먹는 순간에 죽었을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도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습니다.
이는 선악과 자체에 독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이면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추방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까 염려함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비록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생명나무의 실과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망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모든 인생들은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탄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창 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생명과의 길을 막으셨고 이로 말미암아 생명과를 먹을 수 없게 된 인생들에게는 사망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과를 감추신 하나님께서는 생명과에 나아가는 길을 영원히 막으셨을까요? 아니면 다시 열어 주실까요?
나. 생명과의 길을 회복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누구도 생명과를 먹을 수 없었고 하늘나라로 돌아 갈 수 없었습니다(요 3:13).
이유는 생명과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러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창세에 막으신 생명과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다시 열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마 13:34-35).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과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의 실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고자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예비하게 하시고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허락하시는 새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요 6:53-54] 『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눅 22:7-20]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에덴동산의 생명과는 예수님의 살과 피이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로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로 믿고 먹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생명과의 길을 막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실 분은 누구시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빌 2:5).
예수님 부활승천 후에도 사도들은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유월절을 소중히 지켰고, 또한 성도들에게 영원히 기념하여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고전 5:7, 고전 11:23-26).
그러나 복음이 로마로 전파되면서 로마의 다신교와 융합되었고 급기야는 A.D.325년 니케야 종교회의를 통해 생명과인 유월절이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하신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은 또다시 막히게 되었습니다.
 
다. 유월절을 회복하러 오신 재림 그리스도
유월절이 폐지됨으로 생명과의 길은 또다시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상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생명과의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예수님) 밖에 없으시므로 재림하셔야 하며 재림하셔서 감추었던 생명과의 길인 유월절의 진리를 회복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고 재림하셔서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생명과 즉 예수님의 살과 피인 유월절의 진리를 회복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의 진리를 회복하시는 분은 재림 그리스도시요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해 돋는 동방 땅 끝인 한국에 오셔서 새 언약의 유월절을 회복하여 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십니다.
1600년 동안 한 번도 지켜보지 못했던 감추어진 유월절이 안상홍님 오심으로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상홍님은 생명과를 회복하신 재림 그리스도시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어머니 하나님


[ 어머니 하나님 ]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는 결코 지금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할 수 없다. 성벽 하나 남아 있는 중동의 예루살렘이 보좌에 앉을 수도 없으며,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 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진출처 [The Western Wall by Golasso]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구원 베푸시는 성령과 신부를 보았다. 성령 하나님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값없이 인류에게 전해지는 장면에서 성경은 끝이 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바로 전 장에서 여기 나타난 신부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리고 결국 천사를 통해 신부에 대해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천사가 보여준 신부는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던 사도 요한이 이를 보고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기록했다(요한계시록 21:2). 분명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하늘에서 내려온, 사도 요한이 보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그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시다. 그런데 이 짧은 성경 구절 속에 우리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것과 또 ‘우리’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어머니’에 대해 살펴보자.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든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체가 필요하다. 즉 생명은 어머니로부터 이어 받는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영의 생명은 바로 영의 어머니를 통해서다. 성경에 과연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데 왜 ‘나’라고 단수의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셨을까.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남자’와 ‘여자’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분명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 하시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분명 어머니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어머니 하나님의 등장을 성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늘 어머니’라는 데 그 답이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기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셔야 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온 이유는 바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일서 2:25)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영의 어머니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실 수 없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결국 희생이라는 길을 택하셨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이사야 50:1)
 
 
하늘에서 이 땅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오로지 자녀 사랑으로 감내하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시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이 성경구절 속에 담긴 뜻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8~31)
 
 
‘우리’라는 대상은 이삭과 같은 존재다.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축복해 주셨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이삭 외에 하갈이라는 종의 몸에서 장자인 이스마엘을 얻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직 이삭에게만 유업을 주겠다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18~19)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상속자의 조건은 아버지가 낳은 자녀가 아니었다. 만약 아버지의 피만 이어 받아도 상속자의 조건이 된다면 14년이나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당연히 상속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셨다. 이는 상속자의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자만을 상속자로 정하겠다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은 자녀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밝혀두셨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31)
 
 
하늘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의 자녀가 아닌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상속을 약속받은 이삭처럼 하늘 어머니를 믿음으로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곧 이삭과 같이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녀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영생을 받을 수도 없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어머니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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